여러분 안녕하세요~! 키워드로 알아보는 일본시간입니다.
오늘의 키워드는 우키요에(浮世絵, うきよえ)입니다. 먼저 우키요에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전에, 이 그림 두 개를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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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요에가 무엇인지 몰라도 이 그림은 다들 알고 계실 것 같아요~! 일본, 하면 떠오르는 그림들이죠. 이것이 바로 우키요에입니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江戸時代)의 풍속화로, 주로 서민층에서 유행했던 그림입니다.
먼저 우키요에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알아볼까요?
우키요에는 이제 하나의 고유명사로 자리잡았지만, 우키요에(浮世絵, うきよえ)에서 우키요(浮世, うきよ)는 덧없는 세상, 속세를 뜻하는 말입니다.
갑자기 웬 ‘덧없음’이냐고요? 그것은 우키요에의 주요 소재가 되었던 ‘유녀’를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는데요, 남자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함이 유일한 존재 이유였던 유녀들에게 이 세상은 덧없음 그 자체였겠죠. 유녀 뿐 아니라 광대도 자주 우키요에의 소재가 되었는데요, 이들 또한 같은 이유인 것을 아시겠죠. 이후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 소재는 확장되어가지만 우키요에라는 이 이름은 변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대표 작가와 작품들, 그리고 해외 미술계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해 함께 살펴볼까요~^^
먼저 살펴볼 작가는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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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게는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하급 사무라이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사무라이는 대개 부업을 가졌는데, 히로시게는 화가를 부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는 17년 동안 우타가와 도요히로(歌川豊廣)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스승 도요히로가 사망한 1828년까지는 배우와 미인을 주제로 한 판화만을 제작하였고, 스승이 사망한 후에는 풍경화와 풍속, 생활상 등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831년에는 10점의 판화로 구성된 에도(江戸, 지금의 도쿄) 풍경화 시리즈 《도토메이쇼(東都名所)》를 출판하였고, 1834년에는 《도카이도 고주산쓰기(東海道 五十三次)》 시리즈를 출판하였는데, 두 작품 모두 섬세한 필치와 색상의 조화, 서정적이고 시적인 분위기가 뛰어납니다.
1856년에는 총 118점에 이르는 판화 시리즈 《메이쇼에도햑케이(名所江戶百景)》 제작에 착수하였습니다. 에도의 풍경뿐 아니라, 당시의 풍속과 생활상 또한 잘 담겨 있는 이 시리즈는 무려 2년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시리즈 제작 중 히로시게가 사망하여 총 118점 중 그가 만든 작품은 115점이고 나머지 3점은 제자들이 제작하였다고 하네요.
다음으로 볼 작가는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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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시카 호쿠사이는 바로 먼저 보셨던 두 그림의 작가랍니다.
그는 전 생애 동안 3만 장 이상의 작품을 발표했을 정도로 다작하였고, 판화 외에 직접 그린 그림도 굉장히 뛰어났다고 합니다.
이사에 대한 일화가 유명한데, 그림을 그리는 것에만 몰두해 방이 어지러워지면 이사를 했다고 합니다. 하루 만에 세 번이나 이사한 일도 있다고 해요. 93번째로 이사하면서 예전에 살던 집으로 옮겼을 때, 방이 이사 갈 때와 별 차이가 없이 어지러웠기 때문에 더 이상 이사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참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네요.
그의 대표작으로는 《후가쿠 산주롯케이(富嶽三十六景)》,《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 》등이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이 우키요에가 해외 미술계에 미친 영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해요.
1860년대부터 유럽에 일본 미술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통해 일본 문화 및 예술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대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19세기~20세기 초까지 서양 미술 전반에 나타난 일본 미술의 영향과 일본적인 취향 및 일본풍을 즐기고 선호하는 현상을 통들어 자포니즘(Japonism)이라고 한답니다.
우키요에의 유행을 처음으로 이끌었던 사람은 펠릭스 브라크몽이라는 프랑스의 판화가였는데, 어느 날 항상 그가 드나들던 인쇄소 한구석에서 그는 색다른 물건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일본에서 수입한 도자기였는데, 도자기보다도 그것을 싼 포장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해요. 그 포장지가 바로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판화집 《호쿠사이 만화》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유롭고 거침없는 데생에 넋을 잃어, 친구인 마네, 드가, 휘슬러에게 보였는데, 모두 감탄해 마지 않았으며, 이 때부터 호쿠사이의 이름과 우키요에가 파리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키요에에 주목했던 화가는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고흐입니다. 처음 두 그림을 다시 보시고 고흐의 그림을 떠올려 보세요. 알 수 있으시겠지요?
고흐는 호쿠사이보다는 히로시게의 그림에 몰두하였는데, 히로시게의 여러 그림들을 오마주(다른 작가나 감독의 업적과 재능에 대한 경의를 담아서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모방하는 일)하여 그린 그림도 많답니다. 히로시게와 고흐의 차이점이라면, 히로시게의 작품은 판화이고, 고흐의 작품은 그림이라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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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 이외에도 오마주한 작품이 수 점 되고, 고흐의 초상화 뒷 배경을 자세히 보면 우키요에에서 본 따 그린 듯한 그림들이 여럿 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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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고흐와 자포니즘에 관한 여러 일화들이 있으니 찾아 보심도 좋을 것 같네요.
오늘의 키워드 우키요에, 여러분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 되셨기를 바랍니다. ^^
그러면 다음주에도 재미있는 키워드를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みなさん、さような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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